가능한 무해한 인간이기 위해 귀 기울여 듣고 눈여겨보는 흔으로부터

여기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선 일부러라도 생각 안 했어요. 어떤 곳이어야 된다는 생각은 더더욱 안 했고요. 그런 건 여길 떠날 때 할게요. 그래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에 이름을 짓는 건 제게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흐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취향이, 매번 다른 질감으로 서로를 흐르는 공간. 저도 그 흐름이면서 동시에 흐름을 느끼는 주체이기도 해요.

우리는 강가에 살면 금세 물소리를 듣지 못하고, 방 안에 걸어 둔 그림을 며칠 만에 잊어버리는 존재잖아요. 마음도 흐르지 않으면 가라앉아요. 저는 이곳에서 침잠하거나 부유하는 마음을 조금씩 흘려보내요.

적어도 취향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신이 이곳을 취향을 진열하고 전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해요. 차라리 취향이 만들어지는 토양을 함께 일구는 공동체에 가까울 거예요.

바라는 건 이곳에 오는 이들이 꾸미어 낸 마음보다 가꾸어 온 마음을 기쁘게 꺼내 보일 수 있길, 의기소침하거나 의기양양함 없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길, 증명사진 속 경직된 미소가 아닌 마음이 흐르는 순간에만 지을 수 있는 천진한 미소를 짓길.

- 가능한 무해한 인간이기 위해 귀 기울여 듣고 눈여겨보는 흔

Letter fromAlin 앨린